(한국고전한시)

7회北京滯留使臣들의 酬唱詩<2>

   본작품도 조화천의 북경기행시 중의 일부인데 지금도 북경의 자금성안에 있는 천단(환구단)에 대하여 당시 사신들이 수창한 시를 올렸고, 또 그 날(인조 2년, 1624년 2월 3일) 천단을 구경한 경로를 자세히 기술한 <연행록>일기를 뒷부분에 올려 이해를 돕도록 하였습니다. 그밖에도 인조 1년 윤10월 21에서 4일까지 중국황제의 동지 행사도 곁들여 올렸습니다. 물론 내용 전부는 본 홈페이지 <고전번역작품>난에 있고요.  


<一>

  ㉠        『天壇周覽三律』                        李敬亭

1.三淸樹色隔人  宮 初開洞府寬 五帝祠壇雲影合 九天仙闕貝光寒

  皇輿至日躬圭幣 御座常時面玉欄 彩筆自 于氣象 白頭重到 奇觀

2.聖皇齊配玉皇尊 羽衛森嚴擁百神 帝力雄奇 造化 宸心對越體文純

  朝回絳闕圍香霧 禮罷玄壇墮月津 器用陶匏儀尙質 講明前古在儒臣

3.嵬嵬功烈垂千古 郁郁文章冠百王 儀取軒轅郊帝  制兼壇屋象穹蒼

  群靈颯爽從歆饗 一德昭融降福祥 不已原同純亦妙 法天要在法高皇

 

    『천단을 둘러보고 율시 3수를 씀』  이 경 정

 천단天壇 :
  1옛날 제왕들이 하늘에 제사지내던 높은 누각.
  2.지명으로 북경시 정양문正陽門 밖 대사전大祀殿의 남쪽에 있으며 명明、청淸 양대
   제왕이 제사지내던 곳. 지붕이 둥글기 때문에 환구 丘라고도 함
 이민성(李民宬1570-1629) : 본관 영천(永川). 자 관보(寬甫). 호 경정(敬亭). 관찰사 이광준(李光俊)의 아들. 1597년(선조 30) 정시문과에 갑과로 급제, 주서(注書)·병조정랑·정언(正言)·수찬(修撰) 등을 역임하였다. 1608년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하였으며, 1617년(광해군 9) 폐모론(廢母論)을 반대하다가 삭직당했다.
   1623년 서장관(書狀官)으로 명나라를 다녀왔으며, 1627년의 정묘호란 때는 의병장으로 활약했다. 직간(直諫)으로 명망이 있었으며, 시문에 특히 뛰어났다. 의성의 장대서원(藏待書院)에 제향되었다. 문집으로는 《경정집》과 《조천록(朝天錄)》이 있다.

 

1. 삼청궁 안의 나무숲은 속세와 떨어져 있는데

  궁문의 자물쇠가 열리자 궁 안의 땅이 널찍하였네.

삼청三淸 : 1.천단에는 곧 도교의 삼청사상에 의하여 만들어졌기 때문에 삼청궁이 있음.
                2.삼청이란 도교에서 신선이 살던 옥청玉淸、태청太淸、상청上淸으로 도교의 궁관道敎宮觀임

 

  오제를 제사지내는 제단에는 구름이 모였고

  구천의 신선 궁궐에는 자개 빛이 차갑게 느껴지네.

 

  황여가 납시는 날 황제 몸소 제물을 바치는데

  어좌는 언제나 옥황상제의 옥 난간을 마주하였네.

 

  붓으로 저 기상을 묘사하자니 졸렬함이 부끄럽지만

  백두 늙은 나이에 다시 와서 이 기이한 광경을 보네.

 

2. 황제는 하늘의 옥황상제와 똑같이 존경받는 분,

  시위들의 호위는 마치 백신이 둘러싸듯 하였네.

 

  황제의 힘 위대하여 하느님의 조화와 짝하였고

  황제의 마음은 하느님과 마주하여 순수함을 본받았네.

 

  붉은 색 황궁에는 새벽의 향불연기 구름처럼 에워쌌고

  높디높은 천단에 예가 끝나자 달이 먼 나루에 떨어지네.

 

  제사에 쓰는 그릇은 도자기나 바가지 같은 소박한 것들,

  옛날 유신들이 분명히 설명하였던 그대로일세.

 

3. 황제의 위대한 공적, 천고에 전할 것이고

  황제의 빛나는 문장, 백왕의 으뜸일세.

 

  의식은 헌원씨와 제곡의 교제에서 따왔는데

  천단은 하늘의 모양을 상징하여 둥글게 만들었네.

 

  여러 영혼들이 바람처럼 와서 흠향하니

  순일의 덕이 융합하여 복 받을 조짐이 서리네.

 

  끊임이 없다는 것은 본래 순수한 것과 교묘히 합쳐

  하늘을 본뜬 요체는 시조 고황제의 응천부에 도읍을 정한 데 있다네.

 

            『次呈三律』                          趙花川

1. 重城南陌逈人  地望尊嚴勢且寬文窓儀物古 寶宇瑞光寒

   焄蒿悽愴神應降 星斗森羅夜欲  堪恨去年冬至日 龍輿親祠未親觀

2. 中國聖人稱至尊 旻天其子主群神 洋洋如在寧容僞 蕩蕩無名本自純

   端拱九重瞻斗極 欽恭一念徹箕津 固知時至誠因感 親祠南壇簡禮臣

3. 配祖南壇儀自古 相傳五帝歷三王  丘彷彿周天象  色參差玉宇蒼

   老栢拱靑橫竪正 彩雲凝碧暮朝祥 應知聖主齋醮日 念格天皇與太皇

조즙趙 (선조 1년.1568.1.11.-인조 9년.1631.1.1.) : 호는 화천花川. 자는 득화得和. 본관은 풍양豊壤. 1589년(선조 22년).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에게 수학. 사마시司馬試 합격. 1591년(선조 24년). 별시문과別試文科 병과丙科 급제. 임진왜난으로 조부 피살로 복수군에 가담. 1594년(선조 27년) 假注書. 1596년(선조29년) 기사관 임명.  1597년(선조30년) 세자시강원 문학 및 정언. 1600년 (선조 33년) 홍문관 부수찬. 1602년(선조 35년) 영천군수. 1603년(선조36년) 수찬. 1604년(선조 37년) 충청도 옥사獄事의 차사관. 1605년(선조 38년) 성균관 전적. 1606년(선조39년) 경상 좌도 경시관. 1606년(선조 40년) 강계판관 및 <실록 편수관>. 1610년(광해 2년) 장령.  1612년(광해 4년) 통정대부 가자 원종 1등공신. 1617년(광해 9년)  영해부사. 1618년(광해 10년). 병·예조참판兵禮曺參判에 임명되었으나 병을 핑계로 나가지 않음. 1622년(광해 14년) 중국에 등극사로 차출되었으나 가지 않음. 1623년 7월(인조 1년) 예조참판으로 차함借銜하여 동지사로 감. 1624년(인조 2년) 3월에 동지겸성절사의 임무 끝냄. 동부승지 임명. 1624년(인조 2년) 8월 삼척부사로 부임. 동년 겨울 <삼척민막송소문(三陟民 上疏文)> 올려 백성들의 고통을 치유해 준 공로로 삼척부민이 동비銅碑를 세워 공덕을 칭송함. 1627년(인조 5년). 청淸나라의 침입하였을 때에 형조참의刑曹參議로 강화도에 왕을 호송함. 그해 김해부사로 제수되었다가 과만된 뒤 강원도관찰사로 승진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음. 1631년(인조 9년) 1월 1일 64세로 서울 자택에서 별세. 선무종훈宣武從勳으로 이조참판·양관제학兩館提學·세자좌부빈객世子左副賓客으로 추증追贈됨. 1868년(고종 5년) 호남과 영남 유생들의 상소로 자헌대부資憲大夫·예조판서禮曹判書 증직됨. 유고인 시문은 전쟁으로 유실되고 <연행록> 1질과 <연행수창록> 1질 그리고 필법 한 책이 전함.

 

    ◎『차운한 율시 3수』 (1624.2.3.)       조 화 천

1.남쪽 언덕위의 겹성은 사람들이 사는 곳과 멀리하여

  지대도 높고 엄숙하며 널찍하게 자리하였네.

 

  무늬 아름다운 대향전 창안에는 비품들이 예스럽고

  진기한 건물의 황궁전의 빛이 싸늘해 보이네.

 

  자욱히 피워 오르는 향불에 신은 응당히 강림할 것이고

  요란스레 뿌려진 하늘의 별들은 밤이 깊었음을 알리네.

 

  지난 동짓날에는 천자께서 직접 납셨는데

  제사지내던 모습 보지 못하였음이 한스러워라.

 

2. 중국의 황제를 지존이라고 일컫는 것은

  하늘의 아들이고, 백관의 주인이기 때문이지.

 

  넓고 멀리 내려다보이니 거짓을 어찌 용납할 것이며

  거침없이 탁 트인 것은 근본이 순수한 때문일세.

 

  궁궐 안에 팔짱만 끼고 있어도 북두성처럼 우러르고

  공경하고 흠모함은 남족 하늘의 별들까지 아우르지.

 

  진실로 알겠다, 지극한 정성이 하늘을 감동시키는 것을

  몸소 제사를 지내면서도 신하들에게는 간략히 시켰네.

 

3.남단에서 배향하는 의식, 예로부터 있어서

  오제와 삼황을 지나 지금까지 내려왔네.

 

  환구대의 둥근 모양, 하늘을 본떴고

  섬돌의 푸른빛은 하늘의 색깔일세.

 

  아름드리로 잣나무들 가로세로 일정하여

  영롱한 채색 구름 조석으로 머무르네.

 

  마땅히 알겠다. 황제의 정성어린 제사

  천황과 태황(太皇) 모두 감동하여 흠향할 것을,       

 

      ㉢         『次』                             任三山

1.靈壇一上俯塵  遙想群公眼界寬 白玉梯連營室近 黃金殿接斗牛寒

  聖躬親祠陽初動 上帝來歆曉未  白首徒傷在床久 百年孤負此奇觀

2.氷川之老敬而尊 下筆文章更有神 許國不憚身跋涉 事親曾務氣溫純

  春來共向蓬萊路 天授相逢析木津 鷄鶴一群無具眼 可憐誰識舊詞臣

3.濟世奇功光烈祖 格天誠德邁前王 靈宮肅穆魂猶  異樹 壟望更蒼

  聖體祠時歆百鬼 金爐炷處集千祥 分明指點三淸上    雲繞玉皇

임뇌지(任賚之.1586-?) : 인조 때의 문신. 본관은 풍천. 자는 민보(民輔). 도사(都事)로 광해군 13년 경신정시 문과에 급제, 여러 고을의 원을 역임하고 1623년 동지성절사의 서장관으로 연경에 갔다가 옴.


          『차운』           임 삼 산

1. 신령스러운 천단에 올라 속세를 내려다보았으니,

  선배들의 안계가 더 넓어진 것을 멀리서 헤아리네.

 

  백옥 사닥다리는 봄별인 영실에 이어져 있고

  황금 궁전은 차가운 북두성에 닿아 있네.

 

  양기가 처음 생기는 동짓날 황제 몸소 제사 지내면

  옥황상제 새벽 일찍  흠향한다네.

 

  늙어 가는 이 나이에 병상에 오래 누워

  평생동안 바라던 광경 그만 놓치고 말았지.

 

2. 늙은 나이 빙천옹 훌륭하고 존경스러워

  붓으로 쓴 문장마다 신기로움이 깃들였지.

 

  나라를 위하여선 목숨을 아끼지 않았고

  부모를 섬기는 데는 일찍이 효도를 다하였지.

 

  봄에는 우리 함께 고향길 가겠지만

  운명은 우리를 이곳에서 만나게 해 주었네.

 

  나와 당신은 닭과 학의 차이지만

  당신 같은 문장가를 어찌 일찍 알았으랴.

 

3. 황제는 세상을 구제하고 조상들을 빛내니

  하늘을 감동시키는 덕은 누구보다 앞섰다네.

 

  신령이 흠향하는 궁궐은 엄숙하기도 한데

  기이한 나무들은 바라볼수록 영롱하기도 하여라.

 

  성스러운 황제의 제사음식 모든 귀신들 흠향하여

  금향로 향불 위에 상서로운 기운이 모여드네.

 

  삼청궁 위쪽에 분명히 바라볼 수 있는 저 구름,

  다채롭고 자욱하여, 옥황상제를 호위한 것이라네.

 

  <二> 『正陽門外有養魚池譯輩言有五色魚投擲油餠爭先躍食云天壇去路往見試之只有赤鱗浮出餘無所見只池邊一人家紅粉四五姬倚門而視之』                                                       趙花川

  養魚池在曲城阿 未到渾忘勝致多 半畝橫塘糞 裏 一區 水濁泥坡

  貪餠誰道遊金  跳浪 看躍怒蛙 莫笑今行許往返 隔籬時見數枝花

 

   『자금성의 성문인 정양문(正陽門) 밖에 양어지(養魚池)가 있는데, 역관들의 말이 거기에 오색(五色) 물고기가 있어서 물고기 떡밥을 사서 던져 넣으면 몰려와서 받아먹는다고 하기에 천단(天壇)으로 가는 길에 그곳을 가보고 떡을 던져 넣었더니 붉은 고기 겨우 몇 마리가 와서 받아  먹을 뿐 별로 볼 것이 없었다. 다만 연못가에 집이 하나 있는데 그 안에 4,5 명의 젊은 계집들이 문에 나와 바라보고 있었다』(1624.2.3.)                   조 화 천

 

  성 담 모퉁이 언덕빼기 연못 하나 있는데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실망하여 버렸네.

 

  고인 물위에는 똥들이 떠다니고

  들머리 물 구비는 더럽고 혼탁하네.

 

  누가 여기 금 잉어가 있다고 했나?

  먹이를 낚아채는 것은 성낸 개구리뿐인걸.

 

  이번 구경이 헛되었다고는 비웃지 말게

  울타리 너머로 두어 명의 아리따운 아가씨들 보았으니.  

 

   ㉠           『次』                               李石樓

正陽南畔大川阿 十里橫塘楊柳多 金 臨池老韓子 渼陂觀水喜東坡

莫言香餌無搖頰 猶勝芹泥 吠蛙 歸去賞心還有地 齊山春晩未殘花

 

        『조화천의 양어지시에 차운함』   이 석 루

  정양문 남쪽 언덕에 큰 시냇물 둑이 있고

  십리 넓이의 연못가에는 버드나무가 많았지.

 

  금붕어 연못가에서 즐기는 사람은 늙은 이 사람이고     

  물결 언덕에서 물을 바라보던 이는 옛날 소동파였지.

 

  먹이를 탐내는 좋은 물고기들 없다고 한탄하지 말게

  진흙 미나리 논에 지저귀는 개구리보다야 낫지 않은가?

 

  돌아갈 때 봄 경치를 감상할 곳은,

  저 산동 땅 늦봄에 지지 않은 꽃들은 아직 남아있으리.

 

   ㉡           『次』                               李敬亭

出城疑在故山阿 漠漠郊墟柳陰多 滿眼春渠分碧浪 回頭煙景似靑坡

登盤只恨無芹菜 投鉤那嫌過 蛙 粧點疎籬應不晩 東風吹折紫桃花

이경전 李慶全 [1567~1644] : 본관 한산(韓山). 자 중집(仲集). 호 석루(石樓). 1585년(선조 18) 진사(進士)가 되고 1590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이듬해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했다. 1596년 예조좌랑·병조좌랑을 지내고 1608년 정인홍(鄭仁弘) 등과 함께 영창대군(永昌大君)의 옹립을 꾀하는 소북(小北)의 유영경(柳永慶)을 탄핵하다가 강계(江界)에 안치되었다. 같은 해 광해군이 즉위하자 풀려나와 충청도(忠淸道)와 전라도 관찰사를 지내고 1618년(광해군 10) 좌참찬(左參贊)에 올랐다. 1623년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서인(西人)들의 비위를 맞추어 생명을 보전하고 주청사(奏請使)로 명나라에 가서 인조의 책봉을 요청했다. 곧 한평부원군(韓平府院君)에 진봉(進封)되고 1637년(인조 15) 삼전도(三田渡)의 비문(碑文) 작성의 명을 받았으나 병을 빙자하고 거절했으며 1640년 형조판서를 지냈다. 문필에도 명성이 높았다. 문집에 《석루유고》가 있다.

           『앞운에 차운함』          이 경 정

  성문에 나가니 고향산천에 온 것 같아

  아득한 들판에는 버드나무 그늘이 많아졌네.

 

  눈에 가득 들어오는 봄 시내에는 푸른 파도가 갈라지고

  연기처럼 피어나는 봄 경치는 마치 푸른 언덕과 같아라.

 

  밥상에 오른 음식에는 미나리 나물이 없어 한스러운데

  낚시를 놓아 지나가는 개구리라도 잡아오면 어떨까?

 

  성긴 울타리를 봄 경치로 단장하는 것이 늦지는 않지만

  동녘에서 부는 봄바람은 붉은 도화를 떨어뜨릴 것 같군.

 장점 : 북조의 제(齊)나라 왕이 가무에 능한 풍숙비를 데리고 진주에 놀러 갔을 때 풍숙비가 화장을 하느라고 왕의 부름에 늦게 나온 일이 있음.

 

   ㉢           『次』                               任三山

靜對明窓詠卷阿 忽傳淸什興偏多 一條挾路通池面 數道 川落 坡

籬外已堪攀玉蘂 草邊時見弄靑蛙 丁寧欲與主人說 他日移根君子花

 

       『앞의 운을 차운함』         임 삼 산

  밝은 창가에서 시경의 권아(卷阿) 편을 읊고 있다가

  문득 공들의 훌륭한 시를 보니 흥취가 자못 깊어라.

 

  한 줄기 좁은 길은 연못을 향하여 나있고

  두어 줄기 시냇물은 장막에 싸인 언덕 아래로 모이네.

 

  울 밖에는 옥 같이 고운 꽃술이 손으로 만질 만하고

  풀숲 속에는 때때로 청개구리가 놀고 있는 것을.

 

  분명히 주인을 향하여 부탁해 말하노니

  뒷날 이곳에 연꽃을 옮겨 심어 보소서.  

*다음은 위의 시를 쓰던 날(1924년 2월 3일) 화천공의 <연행록>에 실린 일기이다.

 

  2월 3일(정해), 맑고 바람이 세참.

   동관의 주문사와 함께 천단(天壇)에 갔다. 먼저 물고기를 기르는 연못에 가서 유병(油餠, 기름으로 튀긴 떡)을 물에 던져 넣으니. 붉은 색 잉어들이 펄떡펄떡 뛰어올라서 받아먹었다. 그밖에는 별로 볼 것이 없었다. 다만 연못가에 있는 한 채의 집에 여자들이 가득 모여 있었는데 우리가 그곳을 지나가자 자신의 몸을 다 드러내고 나와서 보는 자도 있고, 방안에서 숨어서 보는 자들도 있었다. 그러는 그들은 모두 아리따운 미인들이었다. 그곳에서 한참 동안 머뭇거리다가 이어 천단으로 먼저 가는데 먼저 수직도사(守直道士, 문지기인 도사)의 집에 가서 쉬고 이어서 그에게 부채와 칼을 선물로 주어 첫 번째 문을 열도록 하였다. 두 번째 문에 가서도 수고비를 주고 들어갔다. 먼저 대향전(大享殿)에 가니, 그 전은 36 개의 기둥과 48개의 창이 있으며 그 전각은 3층으로 지붕은 둥글고 푸른색이었다. 이는 원(元)나라 때 지은 북단(北壇)이라고 했다. 대향전 뒤에 푸른 기와로 이은 집이 있는데 이곳은 위판(位版)을 소장(所藏)한 곳이라고 했다. 대향전 앞에 동서로 두 집이 있는데 이곳은 해와 달과 별과 그리고 바람과 구름 및 천둥과 비[日月星辰風雲雷雨]의 신위를 안치해 놓은 곳이다. 3층을 둘러보았는데 맨 위층의 뜰은 둥글고, 중간과 아래층의 뜰은 네모나 있었다. 또 수고비를 주고 문 하나를 열고 들어가니 황제의 재실(齋室)이었다. 침실(寢室)은 백옥(白玉)으로 구들을 만들고 누른 비단[黃綾]으로 벽을 발랐으며 지붕위로 둥근 구멍을 내고 운모[雲盖子]로 덮었으므로 햇볕이 방안 가득히 비치어 작은 날벌래가 날아다니는 것도 다 분간할 수가 있었다. 벽으로 막혀있는 곁방에는 백옥으로 만든 큰 통이 걸렸는데 이는 황제가 목욕하는 곳이란다. 밖에서 옥으로 만든 관을 통하여 목욕물을 끌어들이게 하였다. 나오다가 황제가 집무하는 곳[坐起處]를 보았다. 그곳에는 어탑(御榻, 의자) 하나가 누른 칠을 하여 북벽에 의지하여 놓여 있다. 뜰 아래의 동서 쪽에는 각각 온돌방이 있는데 이곳은 제관(祭官)들이 거처하는 곳이다. 그리고 둘레에는 겹으로 깊은 구덩이[垓字]를 파놓았고 출입문은 튼튼하게 만들었다. 구경을 하고 나와서 도사들이 모여 사는 곳에 와서 쑥국을 곁들인 점심을 끝내고 이어서 남단(南壇)인 환구( 丘)로 왔다.

   이곳도 3층으로서 옥돌로 둥근 누대를 만들었는데 맨 위층은 청유리(靑琉璃)로 병풍석을 만들어 사면으로 두르고, 사방으로 난 층계도 역시 유리석으로 깔았다. 이곳이 하늘에 제사지내는 곳이란다. 서쪽으로 백 걸음쯤 되는 곳에 황궁우(皇穹宇)가 있는데 이곳에 옥황상제(玉皇上帝)의 위판(位版)이 소장되어 있으며, 명태조(明太祖)도 같이 배향(配享)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집의 제도는 기둥이 여덟 개인 둥근 지붕이고 옥상에는 흑유리(黑琉璃)를 덮어서 마치 일산(日傘, 양산)을 펼쳐놓은 형태이다. 구경을 끝내자 피곤하고 힘이 달려서 서문밖에 나가 쉬었다.

   천단은 둘레가 7,8리쯤 되는 곳으로 담으로 둘러쳐 있으며 담안에는 군영(軍營)이 곳곳에 있어서 천단을 지키는 병사들이 거처하게 하였다. 정원에는 삼(杉)나무와 회(檜)나무와 백송(栢松)들을 가로 세로 각 4 장(丈)씩 되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반듯반듯하게 심었으니 매우 교묘한 솜씨였다.

   정양문(正陽門)으로 돌아왔는데 이 정양문에는 협문으로 출입하게 하였고, 이곳을 나드는 사람은 모두 말에서 내렸다. 중국의 높은 벼슬아치들도 이문에서는 모두 교자에서 내려 걸어갔는데 성 남쪽에 있는 정문이라서 그런지 모르겠다. 문밖에는 중성(重城, 겹성)으로 둘러 싸여 있는데 매우 튼튼해 보였다.

   그런데 나에게는 쓸 비용이 없어서 술이고 밥이고 먹는 것들을 모두 동관의 주문사 일행에게 빌어먹게 되니 매우 구차스러웠다. 지단(地壇)은 천단(天壇)의 북쪽에 있는데 예로부터 사신들이 그 곳을 가본 자는 좋지 못한 결과가 있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 오므로 우리도 그런 속되 말을 믿지 않을 수 없어서 가보지 않았다.   

 

*본 글은 위의 작자가 동지상사로 중국에 도착하여 동짓날 의식의 예행연습에서부터 의식에 참가한 내용이 자세히 실려있으므로 여기 참고삼아 올린다 1623년 윤10월 21일에서 24일까지 내용임. 전편의 글은 본 홈페이지 <고전번역란>에 실려있음.

 

  윤10월 21일(정미). 맑음.

   습의(習儀, 예행연습)의 일로 제독(提督)에게 다음과 같이 글을 보냈다.

  '삼가 글을 올립니다. 습의하는 일로 본직(本職)은 본국(本國)에서 진하표문(進賀表文)을 받아 가지고 바닷길을 경유하여 오는데 바람 때문에 지체하였고, 육지에 올라와서도 교체하여주는 역말이 멀리 있고 인부와 말들이 부족하여 이른 아침이나 밤을 막론하고 아무리 바쁘게 길을 재촉하여 왔지마는 일찍이 도착하지 못하고 본월 20일에 겨우 옥하관에 도착하였습니다.

   홍려사(鴻 寺)에 보고하라고 예정해준 날이 있었는데, 본직등이 그 날짜에 대어오지 못하여  22일의 습의 때에는 축하하는 반열의 말석에도 참여할 수가 없게 되었으니 송구스러운 생각 다 말할 수 없습니다.'

   제독으로부터 회신이 왔다. 내일 습의하는 반열에 참여하라고 허락을 해 주었다. 전례(前例)를 찾아보니 만력연간(萬曆年間)에는 이러한 일들이 자주 있었다고 했다. 그리하여 표문을 가지고 내일 습의에 참석하기로 하였다.

홍려사 : 외국 사신들을 맞이하고 조공을 관장하는 기관
만력연간 : 중국 명나라 신종황제(神宗皇帝)의 재위연간(1572-1620)을 뜻함

 

   윤10월 22일(무신), 맑음.

   사경(四更, 새벽 2시경)에 조천궁(朝天宮)에 나아가 동지초도습의(冬至初度習儀, 동지 하례의식의 첫 예행연습)에 참석하였다.

   조천궁은 바로 성(城)의 서쪽에 있는 대관(大觀, 큰 도관)으로 전부터 습의는 반드시 이곳에서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은 우리가 묵고 있는 옥하관에서 10리 남짓 떨어져 있는 곳이다. 중문(中門)안의 공곽(空廓)에서 주문사(奏聞使, 이경전) 일행과 함께 날이 새기를 기다렸다. 중국 조정의 백관(百官)들도 날이 새자 차례로 궁 안의 뜰에 모여들어 의식을 행하였다. 먼저 사배(四拜)를 한 뒤에 분향(焚香)하고, 분향을 한 뒤에 또 사배를 하고, 진홀(搢笏, 홀을 관복에 꽂음)하고, 삼고두(三 頭, 머리를 3번 땅에 댐)하고, 삼무도(三舞蹈, 3번 춤추고 발구름)하고, 3산호(三山呼, 3번 만세를 부름)하고, 또 사배한 뒤에 예(禮)를 끝내었다.

   우리나라 사신들은 지난 2백년 동안 흑포(黑袍, 검은 도포)로 축하반열에 참가한 것이 전례였는데 이번에는 우리 주문사 일행이 예부(禮部)에 글을 올려서 홍포(紅袍, 붉은 도포)를 입고 참석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리하여 새로 홍포를 만들어 입고 참석하게 되었는데 비록 중국 사신들처럼 조복(朝服)은 입지 못하였지마는 전보다 조금은 빛이 났다.

   윤10월 23일(기유) 맑음.

   사경에 조천궁에 가서 재도습의(再度習儀, 2번째 예행연습)에 참석하였다. 또 홍려시에 보단(報單, 방물단자의 보고)하였는데 내일 조회에 나아가기 위해서이다.

   윤백사(尹白沙)가 시를 지었는데 이러하였다.

 

   '향불 안개 피어날 때 상서로운 기운도 오르는데

                  (香霧時兼瑞靄 )

   새벽바람에 실려온 신선 같은 음악소리 새롭기도 하지.

                  (曉風仙樂聽依稀)

   하늘은 지금 막 새로운 양기를 뿜어내려고 하는데

                  (天心正欲陽初動)

   의식에 참석한 이들의 모습 마치  새가 날아오르는 듯.

                  (禮貌眞同鳥數飛)

   천자의 만수무강을 빌려고 날자를 번거롭게 세어 보고

                  (祝聖 來煩攷曆)

   오랑캐들을 잡는 공, 지기정에서 물귀신을 가두기 보다 어려운 것을.

                   (擒胡功過鎖支祈)

지기정支祈井 : 안휘성 우태현에 있는데 聖母井이라고도 한다. 속설에 이르기를 僧伽가 이곳에 물을 관장하는 水母를 내려보내었다고 하는데 옛날 우임금이 홍수를 다스릴 때에 물을 관장하는 괴물인 水怪를 이곳에 가두었다고도 한다.

   우리 사신들 이곳 반열에 참가하는데

                   (陪臣仄跡班行內)

   붉은 도포로 검은 옷을 대신하라는 허락을 얻었네.

                   (新許猩袍易黑衣)'

 

   나는 그 시에 차운을 했다.

 

   '바람은 향로의 연기를 끌어다가 그 가루를 뿌리니

                  (風引爐香落屑 )

   상림원 궁궐안의 까마귀는 흩어지고 새벽 별이 성긴데.                   (上林鴉散曉星稀)

   참가한 관리들은 뜰에 표한 반열에 따라 서 있는 것이 마치 그림 같고,

                 (班隨陛列森如畵)

   의식을 선창하는 소리 하늘에서 날아 내려오는 듯 은은히 들려오네.

                 ( 自天來隱若飛)

   황제의 만수무강을 다투어 축하하고,

                 (堯壽萬年煩競祝)

   온 천하가 새로운 운명으로 발전되어 달라고 모두 함께 빌었네.

                 (周王新命用共祈)

   우리 사신 본국에 돌아가서 무엇을 자랑할까

                 (陪臣返國誇何事)

   개국한 지 이백년 된 지금에 와서 붉은 옷을 새로 입게 된 것이구나.

                 (二百年今創紫衣).  

 

   윤10월 24일(경술), 맑음.

   4경에 대궐에 나아갔다. 장안문(長安門)으로 들어가서 승천문(升天門)을 지나고 단문(端門)을 지나 오봉루(五鳳樓)아래서 숙배(肅拜)하였다. 4번 절하고 3번 고두( 頭)한 뒤에 광록시(光祿寺,음식물을 관장하는 관청)에서 술과 안주를 장만하였다. 우리들이 거기에 들어가 참석하려고 하는데 각 자리에 차려놓은 생선이나 고기 반찬 같은 음식물들을 어느새 거지들이 들어와 다 거두어 가버렸다. 우리는 음식 맛도 보지 못한 채로 다만 잔치를 베풀어준 데 대한 감사의 뜻으로 절을 한 번 하고 3번 고두를 한 뒤에 돌아왔다. 승천문은 안팎에 모두 옥으로 된 기둥이 쌍쌍이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