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7/18 (16:53) from 118.37.112.177' of 118.37.112.177' Article Number : 14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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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년상三年喪 제도의 유래와 가족관계 고찰.
삼년상三年喪 제도의 유래와 가족관계 고찰.
  
                 고찰자 : 청계 조면희

삼년상三年喪 제도의 유래와 가족관계 고찰.

부모자식과의 관계에 있어서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최소한 동물의 본능이고 공통적인 행위이다. 그런데 자식이 그 부모의 사랑에 보답하려고 하는 것은 동물 중에 특히 사람이다. 이게 사람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이고 이 다른 점을 지키려고 하는 것이 예절이며, 그 예절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벌로써 통제하려는 것이 법이 된 것이다.

부모의 사랑에 대한 자식의 은혜 보답은 부모가 살아생전은 말할 것도 없이 효孝 사상으로 유지되어 왔으나 죽은 뒤에까지 그 은혜를 갚기 위하여 삼년상을 정한 것은 기원전 10세기 주왕조周王朝 훨씬 이전부터 중국에서 전해 내려 왔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그 당시 예절을 공자가 정리한 경서인 <예기禮記>에 실려 있고 이것은 위로 천자에서부터 아래로 서민들에게 이르기까지 공통적으로 지켜야 되는 규범이었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공자와 같은 학자들은 교육으로 이것을 전수하였으나 사실은 당시에도 실제 지켜지지는 않은 것 같다.

이는 공자의 제자인 제여宰予가 공자에게 건의하기를 ‘삼년상(만 2년 탈상)은 너무 긴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 특히 관심 가지시고 좋아하시는 예절이나 또는 음악 같은 것도 너무 오랜 기간인 3년이나 생활에 실행을 안 하면 소양素養이 무너질 것입니다. 농사짓는데 곡식도 1년이면 주기가 바뀌는데 1년 만에 탈상을 하면 어떻겠습니까?’하니, 공자가 답하기를 ‘1년 상을 끝내고 쌀밥을 먹으면 밥맛이 달고 비단옷을 입으면 편안하겠는냐?’하였다. 그러자 재여가 편안하겠다고 하니, 그러면 그렇게 해도 좋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재여가 자리를 비우자 공자가 다른 제자에게 말했다. ‘대체로 자식이 나면 삼년이 지나야 부모의 품에서 벗어나는데 재여는 그 부모에게 사랑을 못 받았는가?’하고 의문적인 말을 했다고 한다.

또 <맹자> 책 등문공장에 보면 등문공이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 맹자에게 삼년상을 치르는 방법을 묻고 그것을 실행하려고 하니 그 신하들이 모두 반대하기를 지금 삼년상을 실시하는 나라가 없고 우리 종주국인 노나라의 선세 군주들도 실행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 삼년상 제도는 그 이후 진한秦漢을 비롯하여 당송시대에도 국가적인 시책으로 지키도록 하였나 황제의 후계자부터 이 제도를 제대로 실행하지 않고 여러 가지 편리한 방법으로 바꾸어 가꾸어 갔다. 그야말로 유야무야하게 되어 내려 왔다. 뒷날 이 교육적인 사상은 송유宋儒들 특히 주자朱子 같은 학자들에 의하여 예제가 다시 정립되고 또 교육을 활성화 시키는데 주력하게 되었으나 그 이후에도 실제로 이제도가 실행된 역사적 자료는 별로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불교사상이 끝나고 유교사상을 받아들인 이씨조선이후 이 예법은 거국적으로 숭상되어 왔으며 특히 중국에서 청왕조가 집권한 이후 우리는 만주오랑캐들과 차별화되는 이념으로 예법을 특히 발전시켜 나갔는데 복식에 대한 예론은 결국 당파싸움으로까지 발전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면 오늘날의 부모상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어떻게 하여야 할까? 이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전통과 현실 사이에 합리적인 제도를 정립해야 하겠다. 옛날에는 부모를 살리지 못하고 돌아가시게 하였다는 죄책감에 거친 삼베옷을 입고 짚으로 엮은 거친 자리에 거처하면서 삼년동안 죄인罪人 생활을 하였는데 사회생활이 복잡한 요즈음 그렇게 하면 외계인 같이 느낄 것이다. 그러니 요즈음 장례식장에서 처리해주는 복장과 방법을 따르고 거상기간居喪期間은 따로 두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리고 돌아가신 부모에 대한 애도는 마음으로 늘 잊지 않으면 되겠다. 그리고 제사문제는 본인이 전에 언급한 것과 같이 부모제사는 자식이 살아있는 한 사망일에 지내도록 하되 제사음식은 부득이한 경우 전문 음식점에서 맞추어 해도 무방하다고 본다. 살아 있는 부모의 생일잔치를 전문음식점에서 하는 것과 같은 논리이다. 이렇게 되다보면 앞으로 전문적으로 제사 장소를 제공해주는 영업장도 생길 것이다. 그리고 조부모 이상은 1년 중에 하루를 정하여 시제로 들여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살아있을 때의 부모자식과의 관계는 다른 사람과 차별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자손이 먼 외국을 다녀와도 그냥 꾸벅 머리만 숙이고 인사를 하면 딴 사람과 다른 점이 뭐 있는가? 그래서 나는 아들이나 손자가 어디 다녀오거나 또는 명절 때 꼭 구식으로 절을 하게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친밀감과 엄숙함을 맛보게 하는 것이다. 아들 에게도 자기 아들에게 특이한 날 반드시 절을 받으라고 한다. 그랬더니 그것이 의의가 있는 것 같다고 하는데 이는 나 듣기 좋으라고 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 뭔가 차별성을 보여주는 것이 좋다.

조상에 대한 제사의식의 고찰은 본인이 지난번에 본인의 홈페이지 <초서 및 한시연구> 중 아래 주소를 클릭하면 <제례 전통을 현실에 맞게>  라는 제목으로 본인의 소견을 올린 내용이 보인다.

  제례 전통을 현실에 맞게 바꿀 때가 됐다

어쨌든 옛제도를 그대로 따라갈 수는 없는 일이고 현실과 절충점을 찾아 제도를 고쳐 나가야 하겠기에 나의 평소에 느꼈던 생각을 이렇게 적어 제안하는 것이다.   

             孤山黃耆老先生 原本屛風                      


           孤山黃耆老書 李白草書歌行 淸溪摹寫



李白草書歌行原文

少年上人號懷素,草書天下稱獨步。 墨池飛出北溟魚,筆鋒殺盡中山兔。
八月九月天氣涼,酒徒詞客滿高堂。 牋麻素絹排數廂,宣州石硯墨色光。
吾師醉後倚繩牀,須臾掃盡數千張。 飄風驟雨驚颯颯,落花飛雪何茫茫。
起來向壁不停手,一行數字大如斗。 怳怳如聞神鬼驚,時時只見龍蛇走。
左盤右蹙如驚電,狀同楚漢相攻戰。 湖南七郡凡幾家,家家屏障書題徧。
王逸少,張伯英,古來幾許浪得名。 張顛老死不足數,我師此義不師古。
古來萬事貴天生,何必要公孫大娘渾脫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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